HOME > 은혜의 말씀 > 새벽묵상
4. 자녀 사랑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부모가 되어서 자기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사랑의 표현이 서툴러서 자녀들 관점에서는 부모가 사랑이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옛날 부모들은 어른 앞에서 자기 자식에게 사랑 표현하는 것을 옳지 못한 것이라고 배워왔기에, 그러한 분위기에서 자란 자녀들은 부모가 되어도 여전히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용서하고 이웃도 사랑하라 하셨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로서 정작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할 이웃인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먼저 잘못된 자녀 사랑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자녀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은 올바른 사랑이 아닙니다.
사사기 17장에 보면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미가’라는 한 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몰래 어머니의 거액의 은을 훔쳤다가 어머니가 훔친 사람에 대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퍼붓는 것을 듣고는 두려워서 다시 어머니께 돈을 돌려 드렸고, 어머니는 즉시 저주를 취소하고자 다시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합니다. 그래도 마음에 걸렸는지, 어머니는 아들에게 돌려받은 은의 일부를 은장색에게 주어 하나님을 상징하는 우상을 만들어 미가의 집에 있는 신당에 두게 하였고, 미가는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이후에 떠도는 레위인 청년 하나가 미가의 집을 찾게 되었고, 미가는 그에게 사례를 하기로 하고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그제야 그는 안심하고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우상은 단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땅을 버리고 다른 땅을 찾으러 떠날 때 그들에게 빼앗겼고 제사장을 맡았던 레위인 청년도 그들의 제사장이 되어 동행하였습니다.
성경은 이후에 미가와 그의 가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미가의 어머니는 자녀의 잘못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올바로 훈계하지 않고, 잘못된 방법으로 해결하려다가 결국은 자녀의 가정 전체를 하나님께 저주받을 가정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둘째는 자녀를 편애하는 것은 올바른 사랑이 아닙니다.
형이 받을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고 라반 삼촌의 집으로 도망쳤던 야곱은 아내를 넷이나 두고 아들 열둘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사랑한 아내는 라헬이었고, 가장 사랑하는 아들도 라헬의 아들인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에 사랑스럽기도 하고,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으므로 어린 요셉이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특별히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혔고, 채색옷을 입었다는 것은 다른 형제들처럼 농사나 목축의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편애로 인해 요셉은 다른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결국은 형제들로부터 죽을 위기와 노예로 팔리는 수치를 겪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둘째로서 형 에서를 시기하며, 아버지 이삭의 사랑도 알지 못했던 야곱은 자기 자녀들을 공평하게 사랑하고 우애있게 키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녀를 사랑해야 할까요?
첫째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인이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때 구약에서는 보통 ‘헷세드’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헷세드’는 ‘인자’, ‘긍휼’, ‘자비’, ‘은혜’ 등 여러 단어로 번역되는데, 이 단어가 하나님께 사용될 때에는 자기 백성을 향한 언약에 기초한 불변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실망하게 되는 때는 부모가 전적으로 자신의 편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때일 것입니다. 부모로 산다는 것도 때로는 많이 힘들겠지만, 자녀가 정말 부모의 도움이 필요할 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무시하고 넘어가거나, 도리어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책망을 하게 되면, 다시는 부모에게 어떤 도움도 요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알고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듯이 부모도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자녀가 전적으로 부모를 믿고 신뢰하도록 변치 않는 사랑으로 품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신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아셨던 것처럼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라도 부모는 자녀를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여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듯 부모는 언제든 자녀가 의지하고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자녀들 인정해주고 하나하나가 차별 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항상 사람들 간에 오해하게 되는 것이 당연히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똑똑한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그 시절 그때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도 어려서 부모 사랑받아보겠다고 노력했던 것처럼 아이들도 나름대로 노력합니다. 조금만 더 아이의 행동을 인정해주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해주십시오. 때때로 부모가 징계할지라도 자녀는 징계도 사랑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행동으로도 사랑을 느끼게 해주셔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과 특성을 살펴 합당한 은사를 베풀어 주시듯이 자녀들의 성격적 특성과 마음을 각각 살피고, 합당한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할 때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믿고 영육간에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할 것입니다.
셋째는 자녀가 부모를 향해 노여움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피치 못해 징계할지라도 자녀가 수긍할 수 있는 정당한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부모에 대한 노여움을 평생동안 품고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모에 대한 반감으로 어려서부터 지켜온 신앙마저 버리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을 바탕으로 한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부모의 사랑과 삶을 통해 자녀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교제할 수 있도록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할 것입니다.
새벽묵상
1. 나는 내 자녀를 잘 아는가?
2. 내 자녀는 나의 사랑을 잘 아는가?
3. 나는 내 자녀의 신앙을 책임지고 있는가?